발렌타인 데이.
너하고는 처음 맞는 발렌타인 데이였는데.
그런거 주고, 받고 형식적이라고 싫어하는 나였는데,
너 준다고 턱없이 모자란 솜씨로
하루종일 걸려서 너에게 건내주었던 그 초콜릿이.
지금 생각해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에 반해,
예쁜 포장지에 정성스레 직접 만든 초콜릿을 포장해와서는,
한 병에 가득 담겨진 각종 사탕들과.
너에게서 처음 받아보는 손편지.
언제가 되어서나 그런 감정을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학교 가기 전 날 새벽 1시.
장난끼 가득했던 나에게 속아넘어가,
너의 따뜻한 진심을 적어내려가주었던 그 시간.
처음이었어.
'너에게 나라는 존재가 그 정도였구나.'
'조금이나마 너에게 존재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구나.'
좋았어.
나에게 너라는 사람처럼,
너에게도 나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안 그래도 잠이 안 왔는데, 오늘 잠은 다 잤구나.' 생각했어.
새학기를 시작하기 며칠 전.
너는 나를 배려해주지 않았어.
싫다는 의사표현을 드러냈지만,
너는 우리보다는 그 아이들이랑이 더 즐거웠나봐.
'내가 떠났다는건 언제쯤 눈치챘었을까?'
'나한테 전화를 걸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아무 음성이 전해지지 않던 나의 마음을 너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맞나봐.
나는 잊고 싶지 않았는데. 평생 가지고 있고 싶었는데.
나에게서 언제부턴가 찬찬히 지워져가고 있는 너를 애써 붙잡아보곤 하지만,
시간이라는 곳에서부턴, 기억이 잡히지가 않네.
"너는 벌써 다 잊었니?"
그렇더라도 이해는 할게.
하지만,
달갑진 않다. 미워.
나는 애써 붙잡으려고 노력이라도 하는데,
너는 그렇지도 않았구나.
너에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지 잘 알겠어.
또, 이런 기억의 종착점은 '떨쳐내기'네.
좋다가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스스로를 보면,
한심하다.
미련받다. 그래.
그래도,
잊고 싶지는 않다.
좋았잖아. 너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래.
그래서 너한테도 억지로라도 지워지지 않는 '내'가,
한 순간이라도 남아있었으면 좋겠어.
그게 좋든, 싫든. 지우고 싶든, 말든.
그래도 이렇게 한 번씩 꺼내볼 수 있는 '너'로 나에게 남아있어줘서 고마워.
나는 잊으려고는 노력하지 않을게.
다만,
이제는 애써 잡으려고도 노력하지는 않을게.
이미 떠나보내야 할 시간들이 많이 지났지만,
애써 되새기고, 붙잡다 보니까 점점 현실에서 벗어난
나를 위한 스스로의 그림들을 그려보는 것 같아.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연습하기도 해.
하나씩 하나씩 떠나보낼려고 해.
고마웠어.
나의 '행복'이 되어줬어서.
행복했어.
너의 시간 속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었어서.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너도 이런 생각들을 찰나의 순간에라도 해봤으면 좋겠어.
이게 무슨 감정인지, 기분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도 그때의 '우리'로 돌아가자면, 나와 함께 가볼래?